코 끝에서 약품 냄사가 진동하는 낯선 수술실의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가장 신뢰하고 있는 사람을 묻는다면 바로 자신의 수술을 집도하는 담당 외과의사일 것이다. 환자와 의사 간의 충분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며, 수 시간을 수술과 사투를 벌어야 하는 외과의사에겐 환자의 생명과 수술 후 후유증에 맞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무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1밀리미터의 싸움>은 그 치열한 수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밀도 깊게 기록함과 동시에 소설보다 높은 몰입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대부분 의학을 다루는 책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움을 느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반면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더니 너무 재밌어서 아껴 읽게 된다. 의학 관련 책을 통틀어 드라마처럼 극적인 책일 것이다.
새삼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 있는 외과의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1mm 이하의 작은 혈관 속을 헤집으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기형 혈관을 제거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확실한 건 이 책을 쓴 저자가 세계적인 신경외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환자는 믿고 수술을 맡겼을 거란 사실이다.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수술은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이 책에서 다루는 12명의 환자들은 매우 위급하거나 수술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수술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숨 막힐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데 한편으론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의사에게 환자는 수많은 환자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환자에게 의사는 처음인데 검증된 실력만큼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저자나 이 책을 추천한 이국종 교수로부터 수술을 받는 건 일생일대의 행운일지 모른다. 몇 % 라도 수술 성공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앞서 이 책을 드라마 같다는 표현을 했는데 말 그대로 수술실에는 여러 명의 전문의 동료들이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손발이 척척 맡는 호흡은 굉장히 중요하다. 때론 수술 경과를 지켜보며 빠른 판단력이 요구된다. 어느 한 명도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소홀히 할 수 없다. 기적 같은 일들이 수술대 위에서 벌어지며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었던 환자가 회복되어 완쾌되었을 때는 큰 보람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이다. 정말 아껴가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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