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이 겹치고 겹쳐 지난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되밟으며 기억을 조립하는 경험은 특별했다. 번호 순서대로 이름은 '모던 서울 걷기 코스'라 명명하고 근대문화유산의 남아있는 흔적들을 느껴보는 것도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이 공동 저자로 각각 주제를 맡아 쓴 책이다. 책 구성은 4부로 되어 있으며 '1부 충돌하는 기억 드러내기 : 제국, 자본, 국가', '2부 트라우마적 기억 마주하기 : 식민과 분단 그리고 저항', '3부 배제된 기억 불러오기 : 식민-이산, 독립-건국, 분단-전쟁', '4부 연대와 삶의 기억으로 가져오기 : 성찰적 극복하기와 사회적 치유' 그리고 본문에서 미쳐 다루지 못한 '모던 서울'의 장소들로 채워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흘러가는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 덕분에 오늘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을 두루 다녀봤지만 아직 발길조차 들이지 않은 장소가 태반이었다. 서울은 조선왕조 500년에서 일제강점기, 6~70년대 산업화, 8~90년대 정보화 사회, 2000년대 디지털 시대를 거치는 동안 도시는 확장되고 빌딩과 아파트 숲이 들어서며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되면서 많은 곳이 변해갔다. 하지만 아직 역사적 장소와 흔적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은 남아있다. 이 책은 그 의미를 되새기며 과거의 아픔과 상처, 고뇌와 성찰을 현재의 시간 속에 다시 복원시킨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질문하던 시대적 사명과 소명의식은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해체되고 사라졌지만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는 우리의 태생적 삶의 이유를 모색하게 한다. 공간이 주는 의미는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모아지는 장소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재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대마다 절박한 삶이 있었다. 시대에 순응하며 무기력감을 느끼고 부당한 처우에 분노하며 처절하게 저항했다. 역사는 역사 속에서 머물지 않고 후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물질적인 풍족함, 과학 기술의 혜택은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책을 읽는 순간은 마치 그 시대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생생하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역사적 현장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열기로 뜨거웠고 강렬하게 몸을 사를만큼 열정으로 가득했다. 힘없는 민초들은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약자가 뭉치고 힘을 합치면 거대한 흐름 속에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여전히 모순은 남아있다. 신분제와 노예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주의 속에 태어난 자본계급사회는 또 다른 양극화로 우리를 줄 세우고 있다. 시간을 걸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뿐이다. 기록된 역사의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없다.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은 근현대사의 역사가 꽤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발견해 내는 놀라운 작업이다. 공간이 남아있음으로 기억해 내고 되살릴 수 있다. 이렇게 진지한 시선으로 역사를 톺아보는 책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책으로 읽는 것보다 직접 그 장소에 가보는 것만큼 좋은 학습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꼭 정독하며 읽어볼 만한 책으로 근현대사의 모던 서울을 만나고 싶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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