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는 낡은 목조가옥에서 자랐는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집 여기저기를 뜯어고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건축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를 따라 들어선 국립요요기경기장은 신비로움과 웅장함 그 자체였다. 부드러운 곡선의 천장과 환하게 들이치는 빛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하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건축가가 되어서 이렇게 훌륭한 건물을 짓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구마겐고는 1차 오일쇼크가 올 때도 샐러리맨으로의 삶 보다는 남들이 사양산업이라며 주저한 건축을 하기로 마음먹고 뛰어든다. 구마 겐고에게 영향을 준 건축가 중에 제3세대라 불리우는 1940년대생인 안도 다다오의 첫 작품이기도 한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스미요 시나가야에 큰 자극을 받게 된다. 지금은 빈티지한 느낌의 건물이나 카페 중에 노출 콘트리트 공법으로 지은 건축물을 유행 아닌 유행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안도 다다오의 초대를 받았을 때는 1970년대 중반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에 이은 제4세대인 구마겐고는 사양산업에 접어든 건축의 마지막 불꽃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지금은 세계 각지를 비행기로 돌며(세계일주 티켓은 할인폭이 커서 일정만 잘 잡으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건축 일을 하고 있지만 그에겐 어렵고 힘든 상황이 매번 찾아왔었지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잘 이겨내고 견딘 끝에 꽤 명성 놓은 건축가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본인은 손사레치며 극구 부정하겠지만 건축에 관심있는 학도라면 모델로 삼을만한 건축가인 듯 싶다.
항상 구마 겐고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일본만의 건축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는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건축물은 자연이나 주변환경에 꽤나 잘 어울린다각 나라마다 다양한 건축물이 있는데 그가 추구하는 건축철학은 이를 자신의 건축에 잘 융합시키는 자세는 배울 점이 많다. 한데 일본 번역서를 읽다보면 일본인 특유의 표현이 나오는데 왠지 뭐든 필사적이고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결사항쟁의 투지가 유독 도드라져 표현되고 우리나라에선 잘 안쓰는 단어나 형용사들이 자주 나온다.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일본 특유의 표현이겠지만 거슬리긴 하다. 그렇지만 그가 지은 건축물의 사진을 보면서 이 책이 건축가의 책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얘기를 편안하게 쓴 책이라서 그런지 건축의 깊이보다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하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구마 겐고가 건축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짓는 집이나 건축물 안에서 활동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을 할 때 좋은 팀이나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도 건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능력이라고 한다. 사무소에서 일할 스태프를 뽑을 때도 자신이 직접 선별한다고 하는데 함께 할 사람과 좋은 마음으로 일하는데 있어서 자신만의 노하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건축은 어렵고 멀게 느껴졌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건축가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동선과 확장성,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건축, 건축 자체가 아닌 이용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든다면 겉으로 번지르르 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처럼 간결한 건축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동료와 함께 일할 때 매일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구마 겐고의 건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었다.
[출처] [서평]나 건축가 구마 겐고를 읽으며...|작성자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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