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이 높아서였는지 아니면 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는지 시를 만났고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시를 썼다. 시는 곧 내 목소리였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절규였다. 그래서 각별한 의미를 지녔고 하루의 마침표는 시를 쓰는 행위였다. 순간이동을 한 듯 바쁘게 살아온 삶은 현실에 충실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정글 속 양육강식에 내던지 핏덩이였고,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내 존재의 이유를 위해 거듭 노력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러는 순간 잊혀졌다.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게 되었고, 서재 어디에도 시집은 찾을 수가 없다. 그때 느꼈던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의 통로는 디지털과 다른 놀이로 채워졌고, 한 구절마다 소중했던 싯적 의미조차 아무런 감동도 파장도 일으키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삶의 순간을 포착할 때는 사진이 편했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쥐어 짜내듯이 시를 쓰는 일은 차라리 고통에 가깝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경과 감탄을 보내는 이유는 바로 <시에 죽고, 시에 살다>에 나오는 요절한 천재 시인들의 불운한 삶과 그들이 세상에 남긴 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모든 것이 진지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성숙했었고 허투루 묘사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 표현을 어떻게 몇 마디 안되는 구절에 넣을 수 있는지. 그들처럼 시를 쓰고 싶어서 따라하기도 하고 거듭거듭 시를 고치고 수선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떤 수려한 명문도 이들이 노래한 자신의 삶은 진정성으로 가득차 있으며, 몇 번을 읊조려도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요절한 까닭이나 사연을 들어보면 모두 안타까운 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나야했고, 더 이상 그들의 새로운 시를 만날 수 없다. 오로지 짧은 생애 동안 남긴 시대를 넘나드는 시 마디마디에 존재하기에 더욱 안타까운 기억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이 책에 기록된 시인 중에 기형도 시인만 들어봤고, 나머지 분들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시 전문을 읽고 있으면 감탄하게 된다.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우리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인데 사연마다 기구하기 짝이 없다. 시에 대한 향수가 짙어서인지 아껴가면서 읽을 것 같다. 또한 이들의 대표시 전문이 실려있어서 눈으로 입으로 읊조리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몰랐던 이들의 생애 남긴 흔적을 따라가보면서 어떤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시에 어떤 사유로 반영되게 된 것인지 매우 소상하게 저자는 기록해두고 있다. 시를 사랑한 이라면 매우 소중한 책이 될 것이고, 시를 멀리하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통해 시를 반기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문학의 깊은 향취와 열의를 보이며 빠져든 예전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 싶다. 내겐 무척이나 각별한 기억으로 남을 책이라 소장해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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