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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매우 심도깊은 역사 통찰서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겉껍질을 하나 벗겨낸 기분이다. 국사책이나 다른 역사책에서 접할 수 없었던 날 것이었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였고 화폭에 담긴 생활상은 단면만 보여졌을 뿐이다. 금수강산이라 칭하며 적어도 먹는 것은 풍족할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할 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이다. 군량미를 조달하지 못할 나라라니 율곡 이이의 말마따라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을 토대로 상세하게 기록된 이 책은 저자인 송복 선생이 개정판을 내면서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쓴 책이다. 지난 날의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보길 권할만큼 강력추천 한다. 조선의 실상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은 없었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명맥이 끊기지 않고 조선 500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은 역사적 사실로 취급하지 않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선조 치하에서 터진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과 이순신이 없었다면 그리고 1진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평양에 6개월간 머물지 않았다면, 명이 왜군과 싸우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7년이 아니라 1년도 채 안되어 망했을지도 모른다. 조총이라는 신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전투력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라고 불리웠다. 조선은 군량을 조달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어서 적이 보이면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군량미 확보와 무기들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그 당시 조선은 전쟁에 맞설 준비가 안된 조직이었고 명령체계조차 일원화되지 않았다. 어릴적엔 성웅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사전만한 두께의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답답했던 장면이 있었다. 왜군을 맞아 해상에서 승승장구하며 잘 싸우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왜 파직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전쟁 중이었고 절대적으로 불리한 형세를 이순신 장군이 해상에서 막아준 덕분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것인데 하루 아침에 일반인으로 만든 조정에 절망했다. 류성룡의 필사적으로 복구시키는 노력 덕분에 백의종군하여 마지막 명량대첩을 크게 이긴 뒤 전사하였지만 불필요한 정쟁과 시기가 나라를 좀 먹는 것 같다.


책 내용 중에 충격적인 부분도 많고 인상적인 내용도 많지만 모두 다 말해버리면 책을 읽는 재미가 떨어질 것 같은 우려가 살짝 드는데 책을 펴들자마자 오랜만에 몰입하면서 읽은 책인데다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을 충실하게 써내린 책은 아껴서 읽어보고 싶어진다. 류성룡은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점도 새삼 보게 된다. 선조가 조선 땅을 벗어나면 이미 조선은 조선의 땅이 아닌 셈이었다. 류성룡이 함경도행과 명에 내부한 것을 반대한 이유는 명백하다. 조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상실한 다른 대신들을 보면 기탄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설명을 들은 이항복은 수긍하였고, 류성룡의 뜻대로 의주에 머물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절하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떼우면서 7년을 버틴 끝에 왜를 조선 땅에서 물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명왜전쟁이 되어 땅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저자는 여러가지 이유들을 설명해내고 있는데 매우 설득력이 높아보였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은 무엇이었는가? 만약 조선이 류성룡이 쓴 <징비록>을 반면교사로 삼아 잘 대비하고 조선을 정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역사의식을 망각하여 망발을 하고 일제식민사관에 따른 말을 내밷을 수 있었을까? 조선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인데 이를 거부하고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이 땅을 살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에서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되풀이된다고 한다. 그 당시 무능한 조정과 정쟁으로 화를 남긴 노론-소론, 동인-서인, 북인-남인 간의 당파 싸움은 무의미한 권력다툼이었다. 우리가 만약 이런 교훈을 망각한다면 또 다시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서운 역사다.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저자
송복 지음
출판사
시루 | 2014-05-2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지난날의 교훈을 잊은 나라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여든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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