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책이다. 먼저 책을 집어들었을 때 근래 들어 보기 드문 특이한 판형인데 가로 폭이 매우 좁을 것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양장본인데다가 번질거리는 붉은색 책은 매우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그 뿐만 아니라 좋은 재질의 종이와 올컬러라서 출판사에 책에 기울인 공이 크다는 걸 책을 집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 끼워진 근사한 책갈피는 덤이다. 하나의 실험적인 책이 나온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시린 아픔>은 실연을 당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200페이지를 전후하여 그녀가 그로부터 인도에 위치한 임페리얼 호텔 261호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후 100일 동안 실연 당한 날에 대한 기억들이 적혀져 있다. 색다른 시도인 것 같다. 한창 기쁨으로 들떠있던 시간들은 사진으로만 채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었고, 자유롭게 여유를 만끽하면서도 일본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집에 들러 점을 치는 것이 전부였는데 실연을 당한 후로는 계속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100일이 흐른다.
사랑했던 연인을 완전히 잊히는 시간으로 꼬박 100일이 흐른 것이다. 처음에는 그를 원망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나는 듯한 디테일한 정황들이 글로 드러나지만 계속 지나갈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글도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뚜렷했던 기억이 점점 잊혀지듯 글자색도 흐릿해진다. 짝사랑을 해 본 경험을 비춰보면 사랑에 눈이 뜰 시점에는 온통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환희에 들뜨지만 그것이 혼자만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좌절을 겪게 되면 처음에는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다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듯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될 시점에는 서서히 하나둘씩 내 머릿속에 기억에서 떨어져나가는 것 같다. <시린 아픔>은 바로 사랑과 이별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겪는 감정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초점을 맞춘 부분은 바로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후에 겪는 심리적인 아픔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느낌의 책이었지만 분량으로 따지면 많지가 있다. 1984년이니 지금으로부터도 30년전에 있었던 일인데 이 책을 읽는 것은 독자 개인이 해석해야 할 몫인 것 같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또 퇴색되기 마련이다. 시린 아픔은 그 기록을 독특한 편집으로 표현해낸 책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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