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을 읽을 때면 속이 뒤틀리는 것 같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수많은 예상징후와 경고가 있었음에도 왜국과 국교를 맺으면 '금수의 나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명제국이라 떠받치는 명나라와의 국교가 단절될 것을 우려한 조정은 쓰시마 섬에서 온 사절단을 만나는 것에 미온적이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국론은 분열되어 있었다. 권력에 밀려난 서인인 정철, 성혼, 송익필은 간교한 계략을 꾸미는 데 미리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던 전라도 진안의 정여립을 역모죄로 모함하여 뜻을 같이 한 서인세력들이 동시다발로 상소로 올려 정여립 뿐만 아니라 무고한 천명을 죽이는 천일공로할 짓을 저지른다. 이런 자들이 있었기에 임진왜란을 대비하지도 못했고 막을 힘도 없었다. 하긴 전쟁 중임에도 서인은 역모죄를 꾸며 몇몇 의병장을 참수시켰고, 곽재우는 큰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단지 나라를 위해 싸웠을 뿐인데도 그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 성웅 이순신 조차 바다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왜군을 격파하여 적의 병사와 보급로를 끊는데 공헌을 한 나라의 영웅임에도 역모죄로 백의종군 시켰으니 그들의 무능함과 권력욕은 우매하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고스란히 모든 피해는 백성들이 짊어져야 했는데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적에게 베어 죽거나 먹을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어야 했다.
다른 징비록은 류성룡이 쓴 책을 바탕으로 썼다면 이 책은 지금 한창 방영중인 드라마 <징비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로 씌여진 징비록. 징비록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단숨에 책장을 넘길 수 있을만큼 그 흡입력이 대단하다. 마치 눈 앞에 정황들이 펼쳐지는 것 같다. 드라마 속 장면들과 배우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듯 생동감 넘치게 그려졌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정과 현재 우리들의 정치는 판박이처럼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능한 정권 아래에서는 죄없는 백성들만 고통을 받을 뿐이다. 대의명분을 중요시 한 성리학이 서인들을 통해 깊숙히 박혀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했고, 바로 눈 앞에 위험이 닥쳐오는데도 그들은 현실보다는 이상을 중요시했다. 때마치 <대명회전>으로 200년간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은 후라서 왜국 사절단을 만나 그들의 사정들을 들어보는 것을 바로 국교 맺자는 것으로 생각한 현실인식에서 드러난다. 이미 부패할대로 조정은 부패해졌으니 지방 토호들은 얼마나 지독하게 백성들의 피를 쥐어짜듯 뺏어먹었을까? 나라를 잃고 난 뒤에는 어떤 대의명분도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징비록은 수많은 피로 얼룩진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훗날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될 뿐이다.
정철, 김성일, 윤두수, 신립, 이일 같은 자들은 참수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명나라가 지켜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니 그들은 자주국방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인가? 그런 낮은 자세야말로 속국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니었나. 입바람만 불면 꺼질 것 같은 조선이었지만 육지에서는 류성룡이,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었기에 그나마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징비록을 바탕으로 쓴 현실감 넘치는 소설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많은 영화, 드라마, 책, 만화가 있었지만 이 책은 빠져들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파천한 이후 백성들은 궁궐로 들어가 성을 불태우고 노비문서가 보관되어 있던 장예원도 불살라 버렸다. 이것이 바로 민심이다. 백성들이 눈물로 막아섰을 때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선조는 왜군이 올라온다는 장계를 받은 후 파천을 결정했다. 적에 의해 성이 불탄 것이 아니라 자국 백성들이 불태웠다는 건 그만큼 조정이 얼마나 썩을대로 썩었는지를 보여준다. 백성을 어진 마음으로 돌보지 않고 착복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민심이 흉흉했으리라. 나라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 책은 시리즈물로 나올텐데 기대되는 부분은 후반부에 이순신이 나온다는 점이다. 당하고만 있을 떄보단 당한만큼 되갚아줄 때 짜릿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어릴 적에 만화로 읽던 이순신을 제일 큰 위인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홀로 형편없는 조선이었지만 적과 맞서 싸우며 조선이 왜를 물릴 칠 기회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이다. 명확하게 얘기하자만 명나라와 이순신이었지만 말이다. 아뭏튼 이 책은 방영중인 드라마 <징비록>과 함께 읽으면 흠뻑 빠져들만한 소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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