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를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랑을 배운다>는 그녀가 노년기에 쓴 소설로 원제는 <짐>이었다고 한다.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야. 사랑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니까"라고 말한 존 밸독 교수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로라는 늘 사랑에 대한 짐을 앉고 살아간다. 로라에겐 밝고 활달하며 부모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했던 찰스라는 친오빠가 있었다. 그에 비해 로라는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도 않고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스스로 자신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찰스가 소아마비로 죽자 그 자리를 대신에 부모로부터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아서와 앨절라 부부는 찰스의 빈자리를 아쉬워만 할 뿐 로라에게 큰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는 않는다. 늘 찰스를 그리워하며 아이를 낳는다면 찰스와 같은 남자아이가 생기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몇 해 흘러 플랭클린 부부로부터 아이가 하나 생겼는데 로라의 관심사는 남자아이일지 여자아이일지 였다. 근데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하자 크게 기뻐했던 것도 잠시 막내에게 집안 모든 사람들부터 관심이 기울자 성수식의 대모로 있을 때조차도 그 아이가 죽기를 바랬따. 그러던 어느 날 발작이 있음을 숨기고 유모로 온 귀네스 존스가 발작과 함께 알코올 램프에 떨어져 큰 불이 일어난다.
그 사건때 자신의 동생인 셜리를 구하기로 마음을 먹은 로라는 플랭클린 부부가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되자 더욱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셜리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붓는다. 로라는 사업수완도 뛰어나서 안정적으로 집안을 혼자 이끌어가고 있었기에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테니스 장에서 알게 된 헨리와 셜리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로라는 단 번에 헨리가 어떤 남자이며, 셜리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감지하고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존 밸독 교수를 찾아갈 때마다 특별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든 그들의 결정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로라의 뜻대로 1년간 서로 알아가면서 결혼을 미뤘다면 셜리에게 찾아올 불행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헨리는 이기적이었고 한 직장에 오래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항상 돈에 곤궁했고 알뜰하게 살기 보다는 있는대로 돈을 쓰기 때문에 셜리는 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사랑만으로는 힘들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서로의 마음이 맞고 집안을 이끌어야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했는데 둘은 너무 어렸고 헨리는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아픈 와중에도 억지로 테니스를 치러 간 헨리가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모든 폭언을 셜리에게 퍼붓고 저주한다.
물론 끝까지 셜리를 챙겨주는 로라가 있었지만 이미 결혼생활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남편을 둔 셜리는 칵테일파티에서 리처드 와일딩을 알게 되는데 그는 여행가이자 상대방을 배려하고 낭만적인 기질을 가진 온화한 사람이었다. 셜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헨리가 폭언을 퍼붓는 걸 저주하며, 섬으로 떠나자고 적극적으로 대쉬한다. 헨리는 수면제를 항상 타서 마시는 데 몇 번을 먹는지 잊기 때문에 의사는 주의를 당부했었다. 외출할 때 셜리는 수면제를 먹였지만 로라는 헨리에게 수면제를 타서 주게 되는데.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셜리는 리처드 와일딩과 결혼하고 로라는 재단을 인수하여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대표가 된다. 3년이 흘러 찾아온 루엘린이라는 남자로부터 셜리의 유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로라와 셜리까지는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이 있는데 불쑥 리처드 와일딩이 소유한 섬에 사는 루엘린 녹스가 등장하고 처음처럼에서는 다시 연결고리로 이어지게 되는 둘이 사랑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에는 로라가 처음으로 사랑의 무게를 느끼고 이해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짊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평생 남에게만 사랑을 주고만 했지만 받는 법을 몰랐던 로라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지 궁금하다.
정신없이 파고들어 읽은 책인데 역시 애거사 크리스티의 글은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듯 싶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번역을 공경희 씨가 맡아서 전체적으로 문체가 매끄러웠으며, 번역한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문장에서 어색한 부분이 없을만큼 대사가 살아있다. 그래서 총 6편으로 구성된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 서평(Since 201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남자요리 99 (0) | 2015.05.31 |
---|---|
[서평] 차일드 44 : 톰 롭 스미스 장편소설 (0) | 2015.05.25 |
[서평]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 : 《바보엄마》작가 최문정의 스페인 감성기행 (0) | 2015.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