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로 세상에 나와 왼발을 세상에 내디딘 서른 일곱살 아유무의 지난 성장기 속에서 일본의 버블경제를 관통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야기가 이 소설 전반에 흐른다.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함께 하녀를 두며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시절을 보내던 아유무는 잘 생긴데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아이였다. 일본으로 귀국해서 잠시 생활했을 때는 나쓰에 이모와 야다 아줌마 덕분에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를 따라 이집트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보냈는데 평생 우정을 함께 나눌 동갑내기 친구 야곱을 만나면서 마음에 안정을 얻는다. 넓은 저택에서 살며 차츰 안정을 얻기 시작한 누나와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별 문제가 없이 지낼 것 같았지만 일본에서 날아든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점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소원해지고 험악해져가기 시작한다. 아유무는 착하고 애교많은 아이인 척 연기하며 사랑받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가정 분위기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자신과 다르게 허름한 지하방에서 사는 야곱 가족은 서로를 안고 웃으며 훈훈한 가정의 모습을 간직하고 산다. 가족끼리의 사랑이 넘쳐 흐르고 모두가 행복해 한다. 경제적으로 비할 바 없이 어렵지만 서로를 아끼며 사는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귀국한 아유무는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도교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여 자유기고가로써 이름을 알리게 된다. 아유무에게는 늘 자신이 의지할 친구를 곁에 두었다. 가정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걸 친구들로부터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혼한 부모님과 사토라코몬사마라는 이상한 종교에 빠진 누나. 아쿠쓰가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실체는 해가 갈수록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고베 대지진과 버블경제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지나오면서 아무 문제없이 성장할 것 같은 아유무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그것은 점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탈모다. 탈모로 인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예전만 못한 사람이 되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데 마치 누나가 그랬듯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버린 것이다. 애써 외면했던 사람들. 아유무는 서른 일곱이 될 때까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누구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이다. 누나가 어릴 때부터 보여왔던 이상한 짓에 거부감을 느낀 것도 나와 다른 존재로 분리된 채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때쯤 마음의 소통을 함께 나눴던 친구들을 찾아나섰는데 다시 만난 야곱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와 유대를 맺게 해 준 말 사라바처럼.
이 책은 1권과 2권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잔잔하고 소소하게 흐르는 1권과 달리 2권은 더욱 역동적이고 감정이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결정짓지 못하는 아유무. 2권 후반부에 결혼한 누나와 아유무가 나눈 격정적인 대화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는데 누나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발을 내딛어 가지 않았더라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여전히 변하고 주변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어렸을 때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의미없이 지나왔던 것처럼 누가 대신 정해주길 바랬던 아유무.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에게 전해주는 메세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출타한 아버지. 다시 예전 모습으로 화려하게 삶을 시작한 어머니. 결혼하여 캘리포니아로 간 누나의 변화. 다들 자신의 길을 향해 발을 내딛고 있을 때 아유무는 그대로 멈춰서 스스로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왼발을 내딛어 나가야 할 때이다. 지나온 성장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2권부터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로 한 아유무와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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