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다시 성장할 것인가? 실체없는 창조경제처럼 뉴패러다임은 또다른 언어도단일 뿐이다. 내수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대기업의 고용감축, 명퇴자 양산, 비정규직의 비중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상생경영도 허울 뿐이었고 여전히 물량 밀어내기 방식으로 이익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기존에 관행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한 계약과 경영논리로 늘 대리점주나 노동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왔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현재 드러난 문제들을 바로잡는 노력이 없는 한 산업화시대처럼 성장을 기대하기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취급해온 덕분에(?) 숙련자들은 빠르게 값싼 노동력으로 대채되어 왔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농업사회부터 정보화사회까지 모두 겪어온 세대라곤 하지만 고도성장의 과실을 배불리 먹은 세대가 아닌가? 베이비부머가 대한민국의 희망이자 인류의 자산이라고 저자는 주장하지만 그들은 이제 은퇴를 한 세대다. 근데 저자가 주장하는 건 선언적인 의미밖에 없다. 근거없는 자신감처럼 들리고 어떻게 시스템을 잘 갖춰놓은 선진국인 제쳐두고 한국만이 저개발국의 빈곤퇴치와 인류의 최대 숙원과제인 기아를 원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현실인식의 부재다. 근거있는 데이터를 제시한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가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정치, 경제, 교육 등 어디 하나 합리적이고 이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하기는 할까? 당리당락과 집단 이기주의, 성과위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나? 솔직히 대안이나 답도 없어 보인다. 획일화된 교육시스템 속에서 유치원을 포함해서 근 20년을 배운 뒤 비좁은 취업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옆집과 치열한 경쟁의 정글을 헤쳐나가야 하며 다른 길로 갈려고 하며 험난한 과정을 홀로 이겨내야 한다. 학연, 지연, 혈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그대로 고착화된 채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당하며 버텨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이제 경제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투명경영,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사내 문화, 성과위주가 아닌 능력중심으로 누구에게든 공평한 승진 기회와 기여도에 따른 평가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탄탄하게 내실을 다질 때 성장동력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도 30년간 경영활동을 해온 기업인으로서 경험과 생각을 썼겠지만 솔직히 그 주장과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청년실업, 저출산, 고용불안(비정규직 문제), 불안한 경제 등 산업성장인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만들어놓은 급성장의 결과로 지금 청년세대는 3포세대, n포세대라 불리우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만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할 중점 과제다. <어떻게 다시 성장할 것인가>를 읽으면서 거창한 수식어나 선언적인 표현보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아쉬웠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아닌 다방면에 터진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아직 이 책을 통해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에 내놓은 많은 정책과 법부터 제대로 지키면서 정직하게 경영했다면 사회면에 실리지 않을텐데 말이다. 회사원 개개인을 파트너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소모품으로 쓰다 버리는 존재로 취급하느냐 하는 기업 마인드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성장은 함께 목표에 집중해서 혼연일체로 노력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노력에 따른 합당한 대우와 대가를 약속하면 그만큼 더 회사와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움 패러다임을 제시해도 공감이 가지 않으니 더 답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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