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서로 다른 부부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실직 위기에 몰리게 되면서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 한 달에 한 번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메러디스와 밴더빌트 대저택에 둘러보며 남부럽지 않은 부자로서의 삶을 꿈꾸던 어머니가 미래가 좌절되었음을 깨닫는다. 심하게 다투던 저녁식사 이후 이혼을 결심하게 되고 메러디스와 매슈를 데리고 친가로 가버린다. 이혼 이후 겪은 큰 상심은 몇 달이 되도록 회복되지 않았다. 메러디스는 집을 나오기 전 아빠가 사준 모리스라는 곰 인형에게 의지하며 이혼으로 인한 상실을 어린 나이에 경험한다. 절망과 신경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엄마를 대신한 분은 양봉가인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매사에 정확하고 통제하려는 할머니보다는 과묵하지만 권력이나 명예, 돈에는 관심 없는 할아버지로부터 배우는 일이 더 많았다. 사실 저자가 특별한 유년기를 보내고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할아버지가 보살펴 준 덕이다. 회고록이라고 말하기 전에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소설로써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가졌다. 한창 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을 해준 할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꿀벌을 예로 들면서 메러디스에게 가르쳐주는 이야기들은 감동적이고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벅찬 말들이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할아버지가 박테리아에 걸린 벌통을 모두 불태워야 했을 때 '왜 할아버지는 벌을 키우느냐'라는 메러디스의 질문에 돈 때문이 아니라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벌이 대신 꽃가루를 날라줘서 교환해줘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었다. 벌이 열매를 맺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벌을 잃게 되었을 때 상실감이 크다는 얘기였다. 할아버지에게 양봉은 돈을 벌기 위한 생계수단 보다 생태계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 그저 즐거울 뿐이다. 가족과 공동체, 의리와 생존, 바람직한 모녀 관계 등 모두 할아버지의 양봉 일을 함께 하면서 배울 수 있었던 가르침이다. 그 덕분에 마음에 안정을 찾게 되었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메러디스는 오히려 행운아가 아닐까?
이제는 핵가족이 익숙한 이 시대에 위 세대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회사 들어가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삶의 지혜도 배울 수 없는 이 시대의 아이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수능 입시 체재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고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으며 오늘도 치열하게 무한 경쟁 열차에 탑승한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삶의 교훈은 내 인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게 하는 감동적인 이 회고록은 정말 절대 놓치기엔 아까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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