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 자루를 끌고 지하철 칸을 이동하면서 잡히는 대로 무료 신문을 담던 노인들, 리어카를 끌거나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 노인은 일명 다달이에 주워온 폐지를 차곡차곡 담아 한곳에 모아둔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재활용품들이 보이면 수집하기에 여념이 없다. 예전만큼 가격을 쳐주지 않는데도 동네 사방팔방 거리에 내다 놓은 재활용품을 수거해간다. 지자체 공공 근로로 일하는 것보다 노동시간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이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금을 받는다거나 개인 소유 주택도 없다. 한두 가지 이상 질병이 있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정부 지원금의 대부분이 약 값과 월세비 내는데 쓰이는 형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그나마 정부로부터 혜택도 받고 지원금이 나와 괜찮은 편이지만 가난에 몰린 극빈층은 좁디좁은 고시원이나 그것마저 어려우면 노숙자로 전락한다. 2020년 기준 인구 5,178만 명 중 65세 이상인 노인이 812만 명은 전체 15.7%를 차지한다. 이미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제 은퇴하여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야 할 시기인데도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길러 출가시키느라 정작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분들이 많은 까닭이다.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대다수 노년층은 일자리 문제도 한정적이라 별다른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에 내몰리는 상황인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가난은 나와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며 애써 외면해왔다.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로 대변되는 그들의 사회적인 문제를 고발하고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서 가난도 구조화되버린 것은 아닌지 공동체 관점에서 바라보면 심각한 문제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테지만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고생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일인데 삶의 밑바닥으로 쫓기듯 내몰리면 선택지가 많지 않다. '재활용 정책'과 '재활용 산업'은 각광받는 분야지만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가난한 노인들의 삶으로 연결 지으면 씁쓸한 사회의 단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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