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조들은 병들고 아플 때 무엇으로 치료했을지에 대한 궁금증은 고려 의서인 <향약구급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향약구급방>은 현재 전해지는 의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알려졌는데 정황상 14세기 전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향약구급방>이 의학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증상에 맞는 치료법을 직관적으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한의학이나 민간요법에 기초를 둔 처방전인 셈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세에 살았던 사람들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서양의학에 기댄 우리에겐 비과학적으로 들리겠지만 중요한 건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의학 지식을 보급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과거의 유산이 쌓여 발전한 의료과학 기술 덕분에 치료 범위가 다양해졌다. 하지만 중세 시대에도 오장 육부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고 당시 의학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향약구급방>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이나 처방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방법들이 있었고 알면 알수록 신기했다. 저자는 최대한 읽기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의학을 다루는 만큼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었다. 현재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소장하고 있는 1417년 중간본인 <향약구급방>은 완본 형태로 상·중·하 3권 1책으로 되어 질환별로 활용할 수 있는 처방 550여 개, 치료법 관련 조문 600여 개로 구성된 중요한 문헌으로 민간 보급용으로 널리 활용된 의학 지침서였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향약구급방>을 읽고 해제하여 오늘날에 맞도록 쉽게 풀어낸 해설서를 냈다. 현재 기준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과연 병을 어떻게 이해했고 왜 그렇게 치료했는가에 대한 부분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의학 지식에선 최선의 결과물이었고 책이 귀했던 시대에 <향약구급방>을 민간 보급용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애민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고려 의서인 <향약구급방>을 소개한 이 책이 지닌 가치는 매우 높다고 본다. 무려 600여 년 전의 의학이라는 점에서 당대 문화와 생활상까지 담겨있다는 뜻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현대 의학과 비교해가며 치료법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으로도 의미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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