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중심엔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이 있지만 긴박하게 전개되는 추리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느린 듯 전개되지만 읽어나갈수록 몰입하게 되어 끝까지 집중하며 본 소설이다. 모든 이야기는 우연히 계기를 만나 펼쳐지는데 15년이 지나서 감독이 된 하세베 가오리는 자전적인 이야기인 '한 시간 전'으로 상을 받아 유명세를 탄다. 가이 치호의 동생 가이 치히로는 오하타 린코 선생 밑에서 각본가로 일하고 있다. 하세베 가오리 감독이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을 다음 작품으로 다루고 싶어 연락한 것을 계기로 언론과 사법기관에서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진실에 다가선다. 거의 끝에 다다라서야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에 숨겨진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치 두루마리를 하나씩 펼쳐내듯 당시 사사즈카초에서 살았던 주변 인물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서서히 퍼즐 조각이 맞춰져 간다. 하세베 가오리 집안과 다테이시 사라 집안이 같은 아파트 2층에서 붙어 지냈는데 겉으로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 삶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 끔찍했다. 만약 다테이시 리키토에게 여동생과 공평하게 부모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다테이시 사라가 오빠를 무시하며 허언증 섞은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집안의 과거사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아픈 기억이 있다. 하세베 가오리의 성장기를 담은 에피소드는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연결되는 부분이 있고 마지막 부분에 가선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바로잡게 된다.
'사라가 살해당했다'는 부분만 읽으면 마치 아이돌을 꿈꾸던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보였는데 '에피소드 7'을 읽었을 땐 충격적이었다.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오빠에게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동기와는 무관하게 과연 가쓰라기 의사가 쓴 정신감정서 대신 묘진다니 의사가 내린 의견만 채택되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점도 생긴다. 사실은 바뀌지 않겠지만 어릴 적부터 여동생만 편애하고 아버지로부터 갖은 폭력과 차별을 받으면서 무시당해온 그에겐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증오심으로 폭발하게 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알고 난 끝에 다시 복기해 보면 비극의 끝엔 그릇된 선택과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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