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의지할 것은 두 발로 걷는 내 몸 하나밖에 없지만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또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로지 배낭만 맨 채 사막의 무더위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강추위와 맞서 싸워야 하는 여정이다. 특별한 결심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연히 본 잡지가 그녀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길 위에 있게 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가장 사랑했던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남편인 폴과의 이혼 절차가 끝나자마자 PCT 시작점인 모하비로 떠난 것이다. 이제 그녀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듯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4,285㎞에 달하는 PCT를 걷는 보도여행을 선택한 건 이제서야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절망과 슬픔에 허우적대기 보다 용기와 희망을 얻기 위한 결정이었다.
578페이지로 두꺼운 책임에도 생동감 넘치는 강렬한 문장 앞에 감정이입이 되어 그녀가 겪어야 했을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가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살아갈 의미조차 잊은 채 겨우 숨만 붙어살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고 PCT를 걸으면서 인생을 배운 것은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감동적이고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은 살아있고 세밀한 묘사와 감정은 그녀와 함께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단순히 4,285㎞ PCT를 걷는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이었고 그 안에 삶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났고, 도움을 주고받았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무엇을 찾은 걸까?
2014년 동명 제목으로 <와일드>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호평받은 바가 있는데 거대한 자연 속에 예측 불가능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잔잔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세상에 마치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나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아직 세상은 살아볼만하다며 밖으로 이끌어내주는 책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말 못 할 어려운 순간들이 다가왔다 고통만 주고 지나간다.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힘든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여자 혼자 PCT를 완주했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걷고 또 걸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삶이 힘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꺼내들어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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