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평생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에게 대한 개념정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파타피직스와 언캐니를 다루고 있는 이미지 인문학은 2권으로 구성된 책이다. 진중권 교수가 쓴 책은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이미지 인문학은 그간 그가 보여준 지식세계의 일부분을 본 느낌이 들었다. 글은 말하듯 쉽게 쓰는 걸 선호하는지라 막상 수많은 개념들이 몇 페이지 안되는 지은이의 말 속에 모두 등장하는데 파타피직스, 언캐니부터 플루서, 보드리야르같은 학자는 관련 학과나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것이라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파타피직스의 개념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현실사회에 등장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을 통찰력있게 꼬집은 저자의 필력이 더해지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서서히 개념론적 원리를 수긍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조금 앞선 세대인 진중권 교수처럼 같이 공유한 디지털은 모뎀으로 송수신했던 PC통신과 컴퓨터일 것이다. 대전 EXPO나 수많은 박람회, 전시회에서도 디지털 기술 안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넣은 발명품들을 많이 보아왔다. 가상세계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현실처럼 느껴지고 현실에서 보여지는 개념들이 가상세계처럼 느껴지는 파타피직스의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들이 공유하고 경험해왔던 것들이다. 예를 들면 터치스크린이 있는데 화면을 누르면 그림이 움직인다거나 기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초반에는 신기함 정도에 머물렀지만 다른 기술과 만나게 되면서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이제 빼놓을 수 없다. 전국민이 보유하다시피 한 스마트폰도 터치스크린 개념이 들어간 것인데 디지털 체계와 아날로그가 만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디지털 체계 속으로 편입된 우리들의 주변환경은 이제 신기하거나 놀랍지 않은 일상적인 세계가 되버렸다. 이 파타피직스는 많은 개념들에 포함된다.
파타피직스는 프랑스 작가인 알프레드 자리가 제안한 새로운 분과로 형이상학을 패러디한 명칭이라고 한다. 알프레드 자라가 제안한 파타피직스는 초현실주의와 초합리주의에 영향을 주었는데 파타피직스는 한마디로 상상력을 통해 가상과 실재를 화해시키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개념적 사례를 들춰봄으로써 우리 일상에서 드러난 많은 예들이 결국은 파타피직스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성필의 '마그리트의 빛', 이명호의 '나무' 연작 시리즈, 안성석의 '역사적 현재' 시리즈, 시몬 아티의 <벽 프로젝트> 연작 시리즈, 칼라 TV로 본 1인 미디어의 등장, 나꼼수로 대표되는 팟캐스트, 닌텐도의 Wii,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진의 기호학, 픽토리얼리즘, 다큐멘터리, 사회주의 팝아트, 포레스트 검프 등 진정한 지식확장을 충족시키는 책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볼 때는 그런 개념이었는지조차 몰랐는데 부제처럼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파타피직스라는 세계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시대의 흐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왔고 현재는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요소를 편입시켜 이미지로 재현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영화 <아바타>나 <매트릭스>는 가상현실 속의 세계이지만 양극단을 넘나드는 공간이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근미래에 실현될 것 같은 소재인데 허공에 투사된 영상 위에 손으로 조작한다. <아이언맨>에도 등장하여서 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에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었나 싶다.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넘어가다보면 은유적으로 패러디하여 표현하게 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등장하는 체스보드 위에 말이 되어 싸우는 해리포터 일당과 소설 <겨울나라의 앨리스>는 스토리 라인이 체스의 특정 기보에 따라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앨리스는 현실의 육체가 통째 가상으로 들어간 케이스다. 19세기에 이런 상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진정으로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걸 여실히 보여준 예가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미지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된 수많은 예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본다는 점이 의미있다. 진중권 교수의 필력도 대단한 것이 이론적 정립을 위해 그 유래를 깊이있게 파고들어 수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이어주고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해주기에 인문학적으로도 지식의 파도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력적인 노란색상과 고품질의 사진, 적절히 포진된 일러스트 단면 이미지와 깔끔하게 정리된 편집점은 책의 가치를 높이고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지식인이 된 듯 지적 허영심을 허용한다. 이 책을 다 읽고난 뒤 이미지 인문학 2편인 섬뜩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언캐니의 세계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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