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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Since 2013 ~)

[서평] 기억해줘 : 임경선 장편소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제각기 다르다. 해인과 안나는 외부에서 볼 때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자라지만 실상은 매우 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해인은 사랑하는 연인인 유진과 즐거운 한 때는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갈 때는 비행기에서 낯선 여자에게 어깨를 빌려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뉴욕으로 부모님을 따라 전학하게 된 해인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지만 도서관에서 우연히 안나를 만나게 된다.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기간 동안 뜨거운 사랑이 펼쳐지는데 학교에서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들과의 만남에는 스트로베리 파크에서 안나가 흥얼거렸던 비틀즈의 "스트로베리 필즈"라는 음악이 귓전에 울리는 듯 싶다. 



이들의 부모님은 매우 바쁘다. 해인의 어머니인 혜진은 교수로써 유능한데다 성적 매력이 넘치는 여자다. 하지만 결혼한 뒤로 전통적인 생활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것에는 잘 맞지 않았고 가정에 신경쓰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했고, 급기야 해인이 보는 앞에서 낯선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안나의 어머니인 정인은 낯선 뉴욕에서 안나를 키우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지만 몸에 무리가 와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번역가의 일을 시작한다. 정인과 안나는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서로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 같다. 해인, 혜진, 정인, 안나 모두 각자의 역할과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버터내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에겐 남에게 꺼내지 못한 외로움을 안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된다. 작가의 섬세한 필체 덕분에 한 편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어쩌면 평범한 가족이란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p.128




1부는 해인과 안나가 뉴욕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랑에 서툴렀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해주기엔 상처가 너무나도 많았다. 해인의 어머니는 남편 손에 이끌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지만 치료되기는 커녕 상태는 더더욱 나빠져간다. 그렇게 날씬했던 몸매는 카페인 대신 초콜렛 중독에 빠지면서 망가져 갔고, 퇴원 후 다시 입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병원에서 사망한다. 여기서 가장 슬펐던 장면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사진을 찍은 뒤 화실에서 그리고 있을 때 해인은 얼마나 절망과 자책감에 시달렸을 지 무너져내리는 그에겐 자신조차 추스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화실로 찾아온 안나를 보듬어 안을 수 없었고, 17년간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이들의 풋풋했던 사랑은 독자들로 하여금 숨소리조차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첫사랑이라는 건 그래서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한다.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고국으로 복귀한 안나에게 화해를 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엇갈려서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어릴 떄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해인은 미술교사가 되고 안나는 글을 잘 쓴 덕분에 카피라이터로 경력을 쌓게 된다. 2부는 바로 이들이 다시 뉴욕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서로를 잊지 못했고 사랑을 재확인 한다. 사랑이라는 건 무엇인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힘들 때 가까이서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일 듯 싶다. 타지에서 외로울 때 서로를 가장 의지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싹 틔웠던 해인과 안나는 성인이 되어 여전히 서로를 향한 마음은 그대로지만 안나와의 뉴욕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해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유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책으로 여운이 깊게 남은 소설이었다.






기억해줘

저자
임경선 지음
출판사
예담 | 2014-10-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4년 가을, 임경선 첫 장편소설을 만난다! “어쨌거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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