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미스터리 스릴러와 추리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신작 <인어가 잠든 집>은 메디컬 심리물에 가까운 데다 뇌사 상태에 빠진 미즈호를 의료 과학기술에 힘을 빌려 실험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사회 윤리를 꼬집고 있는 작품이다.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준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자세한 상황 설명과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가업을 이어받은 가즈마사는 주식회사 하리마 테크를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기 위해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BMI) 분야에 온 힘을 쏟은 결과 승승장구 가도를 달릴 수 있었고, 8년 전에 결혼한 가오루코로부터 결혼한 지 1년 만에 미즈호라는 여자아이를 얻었다. 그리고 2년 뒤 이쿠토라는 남자아이를 얻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오다 가즈마사가 바람피운 사실이 드러나며 1년 전 이들 부부는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미즈호는 외부모에게 맡겨져 수영장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즈마사와 가오루코는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장기 기증을 할지 아니면 치료를 계속 해나갈지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가오루코는 치료를 계속하겠다며 장기 기증을 거부하면서 윤리적인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미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미즈호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했다. 일말의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가즈마사 회사의 BRS라는 기술과 호시노가 적극적으로 연구하며 연명 치료는 계속 이어나간다. 게이메이 대학에서 극비리에 연구 중인 AIBS 기술 실험을 미즈호의 몸을 사용한다. 아무리 가즈마사 재산이 많더라도 최신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체로 자신의 딸을 사용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리와 양심을 덮어두고 죽은 듯 누운 미즈호를 곁에 두는 것으로 괜찮은 걸까?
생각해보니 가오루코의 지나친 모정으로 발현된 비극이나 다름없다.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의사 표현도 못 한 채 의료 과학의 실험체가 돼버린 딸을 가까이 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일반인들이라면 불가능한 환경과 조건일 것이다. 미즈호처럼 자신의 자녀가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면 장기 기증이나 매장 혹은 화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등장인물 중 호시노 유야의 애인인 가와시마 마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하리마 저택에서 미즈호가 기계에 의지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 집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미즈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가오루코는 점점 집착이 강해져 현실감각을 잃어간다. 이는 '5장 이 가슴에 칼을 꽂으면'에서 격정적으로 묘사되고 그녀의 가득 찬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 부부는 다른 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역시 장르가 바뀌어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흡인력은 대단하고 느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