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걷기를 좋아했는데 3년전 서울순성놀이에 참여하면서부터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옛 선조들은 하룻동안 4대문을 따라 한바퀴를 걸으면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선조들이 남긴 유산에 대한 호기심과 그 길을 따라서 걸어본다는 상징성 때문에 어느새인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걷는다는 것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 외에도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처음에는 희미한 점선처럼 윤곽이 겨우 드러나보이던 길도 여러 사람들이 계속 오가면서 점점 길로써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먼저 길을 개척한 사람을 본받아서 따라 걷는 것처럼 길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의 걷기>라는 책도 선조들의 다양한 걷기에 관한 역사와 유래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좀 다른 의미의 걷기였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조선의 두 지식인, 예술과 철학을 걷다를 통해 겸재 정선과 여헌 장현광의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다. 정선은 당대 빼어난 그림솜씨가 알려진 벼슬 길에 오른 인물로 영조의 스승이기도 하다. 한자어가 많이 나오고 시조까지 곁들여져서 읽기에는 다소 어렵고 딱딱했다. 2부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 갈림길에 서다에서 홍낭, 이옥봉, 어우동, 나합 등 조선을 대표하는 기생들의 이야기다. 기생들은 문예와 그림 등 예술적인 부분이 능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조예깊은 학식은 결코 문인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기생이 바로 황진이인데 이 책에서도 기생들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언급되기도 했다. 3부에선 젊은 조선, 고려를 거닐다를 통해 15세기 한양 지식인들이 왜 개성으로 가려고 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뤘다. 옛 사람들은 낭만을 좋아하는지 곳곳에 이들이 남긴 싯구가 가득하다. 4부는 '고려 컴플렉스' 탈출여행이다. 한 해를 거듭해갈수록 우리들이 사는 시대는 모든 것이 쉽게 잊혀지고 사라지고 자극으로부터 무덤덤해진 무감각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흔히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처럼 먹고난 후에 버려지는 시대다. 옛 사람들이 걸어간 발자취나 그들이 쌓아놓은 지식들은 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걸어간 길이다. 모든 지혜는 바로 옛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시작한다. 과거를 통해서 배우지 못한다면 지금 걸어가는 이 길도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요즘 주변을 봐도 짜투리 시간에 보는 것은 스마트폰 밖에 없다. 즉, 깊게 사색하거나 책을 통해 얻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다. 빠르게 정보를 얻고 잠시 즐길 것을 찾기 위해 여념이 없다. <옛 사람들의 걷기>는 분명 어렵게 다가오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살았던 선조들이 남긴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풍미와 낭만이 느껴졌다. 멋스럽고 과연 올곧은 선비다운 모습에서 존경심마저 들었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책에 나온 인물들을 통해서 내가 걷는 길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서평] 옛사람들의 걷기|작성자 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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